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에 뇌척수막염으로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시청각장애인이 되었다. 하지만 많은 대중이 알고 있듯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 그녀는 16세에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학했고 졸업 때는 무려 5개 국어를 습득했다고 한다. 평생을 교육자, 사회주의 운동가,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 활동했던 헬렌 켈러가 사망한지 60년 가까이 된 지금, 대한민국의 시청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현행법상 시청각장애인은 별도의 장애 유형이 없어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따로 등록해야 한다. 때문에 국내 시청각장애인이 몇 명인지 정확한 실태조사조차 어렵고 맞춤형 서비스는커녕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시설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는 복지사각지대에 속해 있다.
밀알복지재단은 장애인복지 전문기관으로서 시청각장애인의 권익옹호와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느끼고 헬렌켈러센터를 2019년 국내 최초로 개소했다.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시청각장애인을 찾아내고, 만나서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듣는 것이었다.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러다 33세에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고 시력까지 완전히 잃었습니다. 두 달 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뭘 할 수 있을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암흑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청각장애인은 소통 단절 문제가 가장 심각하기에 타인의 도움을 구하거나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아가기 무척 어렵다. 그래서 헬렌켈러센터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의사소통 지원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자조모임을 구성해 당사자 네트워크를 확장해갔고 활동보조인, 근로지원인 서비스를 제공해 더 큰 사회로 진입할 수 있게 도왔다.
이외에 자립생활을 위한 역량강화 및 직업재활 교육, 헬렌켈러법 제정을 위한 추진위원회 운영 및 공청회 개최, 영화나 언론보도 등 대중매체를 통한 장애인식개선, 점자정보단말기 임대 및 보급 사업, 문화·여가 생활 지원 및 해외세미나 등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헬렌켈러법안(시청각장애인 지원법) 제정 촉구를 위해 밀알복지재단은 2019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전국적 서명 운동 캠페인을 진행했고 이를 국회에 제출하였다. 그 결과 같은 해 10월,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센터가 오픈하고 6년이 지났다. 헬렌켈러센터를 통해 지원받고 있는 시청각장애인은 3,000명 가까이 되었고 올해는 보건복지부 전담기관으로 선정되어 체계적인 지원 강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성과를 거뒀다. 보건복지부 전담기관은 장애인복지법 제35조제2항에 근거하여 설립되므로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는 국가의 인정을 받은 지원센터임을 의미한다. 또한 향후 국가적 차원에서 시청각장애인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복지지원 체계 마련과 권리보장을 위한 노력이 시작됐음에 의의가 있다.
앞으로 과제가 더 많다. 일부 조례가 제정되기는 했지만 아직 시청각장애인은 별도 장애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아 맞춤형 지원 체계 마련에 한계가 있다. 여전히 시청각장애인은 1개월간 외출하지 못하는 비율과 의무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비율 모두 전체 장애인 보다 3배나 높다. 인식개선과 법률적 대안이 마련되어 모두가 설리번 선생님의 마음으로 시청각장애인을 지지하고, 헬렌켈러센터가 복지사각지대의 등불이 되어 대한민국에 많은 헬렌 켈러가 생겨나길 희망한다.
/이수은 밀알복지재단 홍보실장(본지 기자, 한국 장애인고용공단 외부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