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성리.
약 7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예부터 이르기를 “부여에서 가장 불쌍한 마을.” 100년이 넘은 절인 ‘성문사’가 자리 잡은 곳이다.
평균 연령 70대 이상의 초고령화 지역으로 신성교회는 1991년, 이곳 신성리에 세워졌다.
이수현 전도사가 부임할 당시 교인은 89세 이현순 권사와 78세 원희숙 집사 2명이 전부였다.
이 전도사는 강원도 정선에서 목회하시는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말했다.
“아버지! 먹고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라도 좀 해야겠습니다.”
당시는 목회자 이중직‘이 허용이 되지 않았던 때라 아버지는 감리사님께 잘 말씀을 드려 주겠다 하셨다. 마음속으로 ‘그래, 역시 아버지밖에 없어.’라고 생각하던 찰나, 다시 연락이 오셨고 “짐 싸서 당장 집으로 와. 너 같은 놈은 목회할 자격이 없어. 목사는 살아도 강단에서 살고 죽어도 강단에서 기도하다가 죽는 것이 맞다.”라고 말씀하셨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이 전도사는 아침에는 교회에 가서 슬리퍼를 깔아 놓고 기도했고, 저녁에는 주보를 가져다 놓고 기도했다.
“하나님 언젠가는 이 슬리퍼를 누군가가 신게 하옵소서, 하나님 누군가가 이 주보를 읽게 하옵소서.”
혹자는 신성교회를 “예수님이 오셔도 부흥이 안 되는 교회.” 라고도 하였고, “우울증 걸리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돈이 없어 생활하기가 어려웠던 2022년.
코로나를 종식하면서 빛과 같은 소식이 이 전도사에게 들려왔다. 서울 빛가온교회(담임목사 서길원)에서 목회코칭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선정이 되면 월 30만원의 선교비를 준다는 것이었다. 이수현 전도사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장문의 글을 써서 신청했고, 그 결과 매월 20만원의 전도 용품과 10만원의 선교비를 지원받게 되었다. 그렇게 생계를 건 전도가 시작되었다.
한 달에 한 번 1,000개의 전도용품(소금, 물티슈, 건빵 등)이 택배로 오는데 감당할 수가 없는 양이었다.
‘어떻게 전도를 할까?’ 고민하다 이장님께 부탁을 드려 마을 방송을 통해 주민들을 회관에 모으기 시작했다. 당연히 아무도 교회에 오지는 않았다.
[전도 과정]
그러던 어느 주일 아침.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고 예배 시간을 물은 후 대답도 없이 끊었다.
전혀 기대 없이 평소처럼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문이 끼~익 열리더니 한 사람이 들어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
그것은 예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첫 예배 통성기도를 할 때 “저 영혼은 등록할지어다.”, “저 영혼은 다음 주에도 올지어다.”라고 외쳤다.
이 전도사는 고백했다.
‘이 분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임이 분명합니다.’
그날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온 양희순 당시 집사는 당일 바로 신성교회 교인으로 등록하였고, 권사 직분을 받고 2023년 한 해 동안 12명을 전도하여 제40회 부여지방회에서 전도대상을, 제70회 남부연회에서 모범 평신도상을 받았다.
신성교회에는 또 다른 간증이 있다.
교회의 기도 제목 중 하나였던 [ 6억의 예산을 들인 남부연회의 리점프 전도컨퍼런스에 좋은 성적을 거두어 스타리아 봉고차를 받게 해달라는 것]을 본 익명의 성도님이 계좌번호를 묻더니 입금자명 ‘예수 그리스도’로 1,000만원을 헌금하였다.
이유는 지금 당장 전도해서 부흥해야 전도 컨퍼런스에서 상을 받지 않겠냐는 것이었으며 그 주일에 광고를 하고 2주 만에 헌금 2200만원이 모였다.
한 해 결산이 300만원이 안되는 교회에서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으며 그렇게 역사상 첫 선교차량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2024년 3월. 드디어 남부연회(감독 김동현)의 리점프 전도컨퍼런스 결선날을 맞았다. 신성교회는 420표 현장 투표 가운데 80표를 받아 21개 교회 중 1위를 수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매 월 150만원의 전도지원금을 3년간 총 5,400만원을 받게 된 것이다.
전도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은 때에 따라 영혼을 보내주시기도 하셨고, 물질을 보내주시기도 하셨다.
이수현 전도사는 후임자로서 의무를 다하자는 생각에 대전 한빛교회(담임목사 백용현)에서 진행하고 있는 목회자 기도컨퍼런스와 기도학교 등에도 참여했다.
두 명으로 시작한 기도학교는 해를 거듭할수록 인원이 부흥하여 결국 ‘전도’와 ‘기도’는 이어진다는 것을 증명했다. 6인용 상 하나로 식당에서 예배 후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성도들이 늘다 보니 6인용 상 3개를 추가로 구입하였다.
또, 당시 선교부 총무셨던 이기봉 목사(정암교회 담임)의 도움으로 냉난방기가 설치되었고, 남부연회 남선교회 연합회(당시 회장- 오종탁 장로)의 도움으로 85인치 TV도 구입하게 되었다.
게다가, 코로나 시대를 마치고 재개된 한빛교회의 아웃리치를 통해 한빛교회 8교구 교인들의 현금과 헌신으로 허름한 사택이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었다. 아웃리치는 사택 리모델링 뿐만 아니라 마을에 약 80 명의 마을 주민을 초대해 삼계탕 잔치를 열어 주었다.
이 날의 마을 잔치는 시골 미자립교회에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작은 소망의 기도는 응답을 가져왔고, 응답은 더 큰 열매로 다양하게 나타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전도사에게 기도 응답의 가장 큰 기적은 ‘결혼’ 문제였다.
시골에 들어와 홀로 목회를 하다 보니 결혼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2024년 4월 24일 주향교회(담임목사 박형민)의 수요 예배 설교를 맡게 되었고 거기에서 한 자매를 5월 1일 처음 만났다.
“당신의 목회 이야기를 결선 컨퍼런스로 알게 되었고, 한 달 동안 기도한 끝에 당신과 결혼 하기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수현 전도사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에서 낙타를 위하여도 물을 마시게 배려한 리브가를 보며 ‘하나님 제가 결혼할 여자라면 제가 타고 다니는 차에 기름값을 주는 여자면 좋겠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정확히 세 번째 만남에 이 자매는 부여에서 대전까지 다니느라 고생이 많은데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며 기름값 10만 원을 보내왔고 이 전도사는 하나님의 응답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이수현 전도사는 2024년 10월 3일 결혼도 하게 되었다.
이 전도사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전하며 지내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했다.
“기도하면 결혼의 문제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
다양한 곳에서 말씀과 간증을 하게 되는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기적과 기도의 응답을 주신 하나님.
하나님은 서울에만, 도시에만 살아 계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은 시골 작은 마을에 문 닫기 직전의 교회에도 분명하게 역사하시고, 이런 교회도 사랑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도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부족함이 없고, 제한이 없었습니다.
모든 영광과 찬양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신성교회의 이야기가 심심한 소망과 위로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