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와 산업화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많은 자연 재난과 인적 재난을 경험하고 있고, 재난의 규모 또한 대형화되고 있다.
소방공무원은 재난 현장에 제일 먼저 투입되어 재난의 규모를 줄이고 위험에 처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하여 국민의 영웅으로 불리운다.
그런데 매년 업무 중 순직하는 소방공무원의 수 보다 자살하는 소방공무원의 수가 더 많다는
국내외 뉴스 기사는 아주 충격적이다. 위험에 처한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공무원이,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해 자살을 많이 한다는 사실이 역설적이면서 또 마음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소방공무원의 자살 원인에 대해 명확히 규명된 바는 없지만, 소방공무원의 정신건강이 이처럼 취약한 것은 그들의 업무 환경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소방공무원은 전혀 수습되지 않은 재난 현장에 그대로 노출됨으로써 외상(트라우마, trauma)을 자주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직업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재난 현장에서 자신이 부상을 당하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 일차 외상을 경험할 뿐 아니라, 재난을 경험한 다른 사람들의 처참한 상황에 노출됨으로 인해 이차 외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일반인이 평생동안 한 번도 경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재난 현장에 반복하여 노출됨에 따라 소방공무원은 외상 후 스트레스 뿐 아니라, 일반 인구에 비해 수면장애, 우울증, 불안장애, 알코올 사용 장애 등의 정신건강 문제를 더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소방공무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므로 소방공무원의 정신건강 문제는 소방공무원 개인 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국가 안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따라서 업무 특성으로 인해 정신건강이 취약한 소방공무원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전략이 필요하며, 이러한 배경으로 소방청에서는 ‘소방공무원 찾아가는 상담실’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소방공무원 찾아가는 상담실’은 전국 19개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전문상담사들이 소방공무원이 근무하는 119안전센터·구조대·소방서에 찾아가서 근무 중인 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그들의 근무 현장에서 정신건강 인식개선 교육을 시행하고 소방청의 마음 건강 시책을 홍보하며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필자는 ‘소방공무원 찾아가는 상담실’의 전문상담사로 소방공무원을 상담한 경험이 있고, 4년간 부산지역의 해당 사업 책임자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끔찍한 사고 현장의 기억이 떠올라 사고 현장을 지나가지 못하는 소방공무원, 매일 밤 연기가 자욱한 화재 현장에서 비상구를 찾지 못하는 꿈을 꿔서 잠들기를 두려워 하는 소방공무원, 잔인한 범죄 현장에 출동한 이후 그 장소와 비슷한 곳에만 가면 참혹한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올라 가능하면 외출을 하지 않는다는 소방공무원, 화재 현장에서 자신이 조금만 더 빨리 구조하였다면 자녀 또래의 아이가 사망하지 않고 생존하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으로 술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소방공무원, 출동벨이 울리면 용수철처럼 튀어나가야 하는 직업 특성상 소리에 예민해져서 30년째 수면장애로 힘들어하는 소방공무원......상담사로 만난 소방공무원의 다양한 정신건강 어려움이 떠오른다. 슈퍼맨처럼 몸도 마음도 강인할 것만 같은 소방공무원들이 슈퍼맨처럼 강한 모습으로 현장에 출동하여 누군가를 구하지만, 그 ‘슈퍼맨으로서의 경험’이 오히려 그들을 한없이 약하게 만들고, 무너지게 만든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소방공무원은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생명을 구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숭고한 일로 인해 소방공무원의 정신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그들이 영웅으로서 더 이상 일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사이렌이 울리고 있는 그들의 마음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소방청과 소방본부, 소방서에서는 소방공무원의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정책을 제정·시행하고, 전국의 ‘소방공무원 찾아가는 상담실’ 상담사들은 소방공무원의 어려움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그들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연구자들은 소방공무원의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소방공무원 관련 정책이나 프로그램 개발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민들은 소방공무원이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그들을 존경하고 격려하며,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그들에게 협조하고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방공무원의 정신건강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소방 조직, 연구자 뿐 아니라 국민들 모두 귀 기울이기를 기대해본다.
이나윤 부산소방마음돌봄센터 소장·동아대학교 간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