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타임즈 창간을 맞아 칼럼을 의뢰 받고, 주제를 생각하다 ‘첫 만남’’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사전 정보가 있다면 그 정보를 토대로 이러저러한 예측이나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나 사전 정보가 있든 그렇지 않든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우리의 뇌는 익숙한 얼굴을 만날 때와 달리 무척이나 바빠진다.
인지과학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0.1초 이내에 상대방이 신뢰할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평가한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평가는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사람과의 경험과 관련된 데이터에 기초한 평가가 아니라, 얼굴의 친숙한 정도, 비슷한 특징을 가진 인물과의 과거 경험 등 자신의 내적기준을 준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뇌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그러한 방식으로 처리하고 그 결과를 상당히 오랜 기간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우리의 안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의 뇌는 상대방이 가까이 다가가도 괜찮은 사람인지,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인지 판단하는데 숙련되어 있고, 이러한 과정은 개인에 따라 첫 만남뿐만 아니라 타인과 관계하는 내내 작동하기도 한다.
심리학자인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생리적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욕구를 ‘안전’이라고 보았다. ‘안전의 욕구’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불안을 회피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심리학자는 거의 없다. 발달과정에서 특히 영유아기에 안전은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생존에 필요한 물리적 안전감이 확보되더라도 인간은 심리적으로 관계에서의 안전감 또한 갈망한다.
사회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지고 안전해졌지만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해서 받은 수치심과 모멸감, 사랑받지 못하거나 혹은 비난 받을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관계를 단절하려는 마음 등 심리상담실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핵심적 이슈는 관계이다. 우리는 비난 받지 않고, 거절 혹은 배신당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고 싶어한다. 다시 말해서 관계에서 안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렇다면 안전한 관계를 추구하면 그 관계가 정말로 안전해질까?
인도의 사상가이자 연설가인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관계에서 안전을 찾고자 할 때 필연적으로 슬픔과 공포가 커진다라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관계에서 안전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도리어 그 관계에서 사랑은 희미해지고 안전하고자 하는 욕구와 열망만이 남게 된다. 사랑이 희미해지면 불안과 두려움, 슬픔이 증가하고 결국 관계는 안전하지 않게 된다. 현재의 관계에서 내가 안전할지 아닐지 생각하며 상대방을 평가하느라 우리의 뇌가 바쁘고 우리의 마음이 두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상대방을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들을 수 가 없다. 빈 마음으로 온전히 사랑할 수가 없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나의 마음 속에 어떤 이미지들을 가지고 상대를 바라본다. ‘저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에게 친절했어.’ ‘저렇게 인상을 쓰는 사람은 늘 화를 냈던 우리 아빠 같아.’ 등등 과거에 경험된 사람들의 긍정적 이미지와 부정적 이미지들로 가득 찬 우리의 뇌는 과거 경험의 데이터를 토대로 지금 마주하는 사람을 평가하고 분류한다.
이러한 것들이 알아차려질 때 우리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 마음의 이미지들을 비울 필요가 있다. 마틴 부버는 아무것도 믿으려 하지 않는 아집의 사람은 아무것도 만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과거 경험에 기인한 이미지나 신념들을 가지고 있으면 나와 너의 관계로 들어갈 수 없다. 부버는 관계의 목적은 관계를 가지는 것 자체라고 했다. 우리가 관계함에 있어서 안전의 욕구를 채우려는 목적이나 의도 없이 그 사람을 알아가고 만나는 것 자체가 관계의 목적일 때에야 비로소 상대와 참 만남을 가질 수 있고 참 사랑을 할 수가 있다.
* 빈 마음으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말하는 그대로 듣는 것이 중요하다. 잠잠히 상대의 눈에서 빛나는 영혼을 본 적이 있는가?
엄마와 아이의 모습을 주로 그린 미국의 인상주의 여성화가 ‘메리 카사트’의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루이스>(1898년작)는 그야말로 아기와 엄마의 눈맞춤을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 중 하나다. 영유아 연구에 의하면, 유아는 생후 두 달 반에서 석 달 정도 되면 생후 20 센티정도 되던 시선의 초점 거리가 성인 만큼 극적으로 늘어나며 시각적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이 시기의 아기들은 엄마의 눈을 찾으면, 눈을 더 크게 뜨고 엄마를 주시한다.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도날드 위니캇’이 언급했듯이 엄마 품이라는 안전함과 함께 아기는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에서, 엄마의 눈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비롭게도 인간의 신체에 거울을 심어 놓으셨다. 그런데 나를 보기 위한 거울은 내 몸에 있는 게 아니라 타인의 몸에 있다. 이를 소크라테스는 일찌감치 간파했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보기 위해서는 거울을 보아야 하는데 특히 타인의 눈이라는 거울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서만이 나를 만날 수 있고, 타인이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도록 내 눈으로 거울처럼 타인을 비춰주어야 한다. 우리는 말을 통해서도 거울 반영을 할 수가 있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 아무런 판단 없이, 첨언없이, 들은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을 ‘반영하기’라고 한다. 반영하기를 하면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제대로 들려졌고 이해받았다고 느끼게 되며, 관계에서 안전감을 경험한다. 안전을 추구하는 목적을 내려놓고, 판단 없이 상대를 만날 때 그 관계가 안전해지고 참 만남이 이루어진다. 거기에 사랑이 있다.
세계 복음화를 위한 제4차 로잔 대회가 2024년 9월 서울에서 열린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선교적 사명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의 머릿속이 세계복음화의 목표로만 가득 차 있어 그 한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그래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결코 안전한 대상일 수 없고,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김지연 (마르페심리상담연구소 대표, 데이브레이크 대학교 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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