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타임즈=이상섭]

2. 도농 미자립교회의 증가, 선교의 틀을 다시 짜야 할 때
ㅡ기도로 버텨온 교회들, 이제는 구조가 응답해야 한다
농어촌의 작은 교회, 도시 변두리의 골목 교회들 가운데는 오랜 시간 ‘기도로 버텨온 교회’들이 있다. 교인이 줄어들고, 헌금이 빠듯해지고, 담임목회자의 생활마저 불안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예배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 교회들은 성장하지 않았지만, 쉽게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하다.
“이제는 더 이상 기도만으로 버티기 어렵다”는 고백이다.
이 말은 믿음이 약해졌다는 고백이 아니라, 현실이 구조적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다.
ㅡ미자립교회는 ‘일부 교회’의 문제가 아니다
감리회 안에서 미자립교회는 더 이상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다. 도농을 막론하고 다수의 교회가 재정적 자립을 이루지 못한 채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농촌 교회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이중의 어려움 속에서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도시 교회 역시 예외는 아니다. 겉으로는 도시라는 이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임대료 부담, 지역 공동체 해체, 교인 유입의 한계로 인해 ‘도시형 미자립교회’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자립교회 문제를 여전히 ‘개교회의 노력 부족’ 혹은 ‘목회 역량의 문제’로 해석하는 인식이 교단 안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 인식은 미자립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준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고립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진다.
ㅡ지금의 선교 패러다임은 이 현실을 감당하지 못한다
현재 감리회가 유지하고 있는 미자립교회 지원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단기적 재정 지원
둘째, 개별 교회의 자발적 후원
셋째, 목회자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암묵적 기대
이 방식은 일정 부분 역할을 해왔지만, 지금의 구조적 위기 앞에서는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단기 지원은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개별 후원은 교회 간 격차를 심화시키며, 목회자의 희생에 기대는 방식은 결국 사역의 지속 가능성을 무너뜨린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이 교회를 자립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이 교회를 어떻게 함께 살릴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ㅡ‘자립’이라는 기준을 다시 묻지 않으면 길은 없다.
자립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에서 자립은 더 이상 모든 교회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절대 기준이 아니다. 고령화된 지역, 인구가 빠져나간 농촌, 이미 공동체가 해체된 도시 지역에서 자립을 목표로 삼는 것은 오히려 교회를 더 깊은 좌절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제는 ‘자립 중심 선교’에서 ‘공존 중심 선교’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립하지 못해도 사명이 분명한 교회, 규모는 작지만 지역을 지켜내는 교회, 한 동네의 마지막 공동체로 남아 있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존재할 이유가 충분하다.
선교의 목표는 숫자가 아니라, 복음의 지속성이기 때문이다.
ㅡ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선교는 개인의 희생에 머문다
미자립교회 문제는 결국 구조의 문제다. 개별 교회나 목회자의 헌신으로 해결될 수 없는 영역에 이르렀다. 이제 교단 차원의 구조적 응답이 필요하다.
첫째, 연회 단위의 ‘공동 선교 구조’가 필요하다.
개교회 후원이 아니라, 연회 차원의 통합된 지원 시스템을 통해 미자립교회를 함께 책임지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도농 교회의 연대 모델을 제도화해야 한다.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사역과 인력을 나누는 협력 구조를 통해 교회 간 단절을 극복해야 한다.
셋째, 미자립교회를 ‘관리 대상’이 아닌 ‘선교 주체’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작은 교회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기 이전에, 여전히 선교의 현장에 서 있는 교회다.
ㅡ기도로 시작된 교회, 구조로 응답해야 할 때
이러한 구조 논의 앞에서 “교회는 결국 기도로 서는 것 아니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그 질문은 옳다. 교회는 기도로 시작되었고, 지금도 기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의 믿음은 늘 기도 이후의 책임을 동반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구제의 구조를 만들었고, 공동체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았다.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념했지만, 동시에 집사 제도를 세워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했다. 그것이 신앙이었고, 그것이 선교였다.
ㅡ문제는 구조다, 그러나 답은 신앙에 있다
미자립교회의 증가는 감리회가 처한 위기의 단면이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가 다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크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함께 살아가는 교회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선교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우리는 구조를 고민한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개인의 희생에만 기대지 않는다.
기도하는 교회는 결국, 함께 살 길을 준비하는 교회다.
이제 감리회는 선택해야 한다.
미자립교회를 버티게 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가는 교회로 세울 것인가.
(정론타임즈=이상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