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타임즈=원혜영 ]
황창진 목사(산돌교회 / 공적교회연구소 소장)Q. 목사님, 공적교회연구소에서 ‘교리와 장정 새롭게 읽기’ 작업을 시작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제가 목회 현장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신학 무용론입니다. “몇 명이나 모이냐”, “결산은 얼마나 되냐”는 식의 질문은 결국 사람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 헌금을 어떻게 증대시킬 것인가로 이어지곤 하죠. 물론 교회 운영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 과제들에만 몰두한 나머지, 신학과 해석학의 가치를 등한시하는 태도는 정말 괜찮은 걸까요?
Q. 실제로 신학이 목회 현장에서 외면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A. 교회 성장 논리가 지나치게 강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서문자주의가 강화되었죠.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다 보면, 회중의 삶에 깊이 닿는 설교는커녕 획일적이고 배타적인 해석에 머물게 됩니다. 결국 이는 해석학적 역량 부족으로 이어지고, 교회의 건강한 성장도 저해됩니다.
Q. 그렇다면 성서를 해석하는 데 어떤 역량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A. 중요한 건, 해석학적 능력입니다. 2천 년 전의 신화적 세계관 속에서 쓰여진 성서를 오늘의 삶에 어떻게 유효하게 읽어낼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바로 해석학이죠. 역사비평, 문학비평, 구조주의적 접근 등 다양한 해석학적 방법이 존재하고, 설교자들은 이를 체득해야 합니다.
Q. 이 해석학적 능력이 부족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요?
A. 실제로 감리교회를 포함한 여러 교단에서 법 해석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같은 사안인데도 연회나 재판부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것, 바로 해석의 문제입니다. 문자주의에만 의존하거나, 진영논리에 빠지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법 해석은 불가능합니다. 이것 역시 해석학적 소양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Q. 해석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A. 교회를 성장시키는 기술은 비교적 단시간에 습득할 수 있는 반면, 해석학은 긴 시간 동안 학습하고 체화해야 하죠. 또, 기존의 사고방식, 즉 경직된 패러다임을 해체해야만 가능한 작업입니다. 그러니 많은 목회자들이 현실의 무게에 눌려 이 해석학적 여정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Q.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리좀(Rhizome)’ 개념을 도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A. 맞습니다. 철학자 질 들뢰즈가 제안한 ‘리좀’은 수평적 관계맺기, 끊임없는 확산과 연결을 상징합니다. 해석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정된 의미를 따르기보다는 열린 태도로 다양한 의미를 발견하고, 늘 새롭게 관계를 맺는 작업이어야 하죠. 이런 해석학의 태도는 교회의 법과 성서 모두에 적용 가능하고, 목회자들의 해석 역량을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Q. 앞으로 공적교회연구소에서 진행하는 ‘교리와 장정 새롭게 읽기’ 작업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나요?
A. 우리는 리좀의 해석학을 바탕으로, 문서의 본래 의도와 정신을 되살리고자 합니다. 단순히 문자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관점과 시대의 삶을 고려해 읽는 방식입니다. 최종적으로는 해석학적 소양이 뿌리처럼 자리 잡아, 타당하고 공정한 교회의 법 적용과 설교의 질적 성장을 이끌어내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와 설교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A. 성경을 살아 있는 말씀으로 선포하고, 교회의 법을 공동체의 기준으로 읽어내는 일은 단지 기술이 아닌, 모든 설교자들이 리좀의 삶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배우고 연결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여정을 계속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교리와 장정 새롭게 읽기’는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다시 해석학적 감각을 회복하도록 돕는 운동이다. 황창진 목사는 기술(skill) 중심의 목회를 넘어서, 해석학적 소양의 회복을 통해 교회와 설교의 품격을 다시 세워야 할 때라고 말한다.
원혜영 기자(haeng97a@gmail.com)





